이 책은 동아시아 도시에 관한 여러 학자의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것이다. 도시와 도시의 삶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도시의 확장과 변형”이란 말 속에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 담긴 관찰과 시각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의미와 여러 연구의 성과는 서문에 이미 자세하므로, 책을 갈무리하는 이곳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도시인문학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도시의 상징은 성벽과 시장이다. 본래 성벽의 제제를 받던 시장은 성벽이 허물어진 도시를 지배하였고, 글로벌화라는 흐름을 만나 거대한 힘으로 성장했다. 이제 도시는 수행성 원리(principle of performativity)로 작동하는 글로벌 시장의 극단적 현세주의 욕망으로 위협받는 공간이 되었다. 고대부터 인문학은 도시 욕망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서구 도시가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듯, 동아시아 도시는 종묘와 천지에 대한 제사를 통해 도시 정신을 유지했다. 이런 이데올로기 시스템이 약화된 시점에서, 전지구적으로 성별화된 자본주의 사회라 불리는 현시대의 제어 기제에 관한 고민은 인문학이 짊어져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도시인문학은 도시가 공존과 호혜를 지향하고, 삶의 의의를 제공하는 인간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금 여기’에 개입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은 존재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저 도시의 장식품이 되어버린 인문학은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는 광고판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