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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저자:박주병 지음
출판일월일:2015년 7월 27일
판형/면:신국판/322면
ISBN:978-89-6071-532-5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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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수필인들이 야단법석을 떨어댄다. 수필의 시대가 온다고 우 몰려 돌아다닌다. 독자가 시나 소설보다 수필을 선호하는 현상을 수필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런 시대가 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같은 시며 「메밀꽃 필 무렵」「사반의 십자가」같은 소설의 수준을 뛰어넘는 수필이 나오지 않는다면 수필의 시대란 백번 와도 무의미하다.
닭이 한 만 마리쯤 모인다면 그 소리 크기는 천둥소리만 할지는 모르지만 천둥소리는 아니다. 팔공산 꼭대기에 초라니패, 각설이패들이 들꾀어 고삿소리며 장타령을 한다 해도 베토벤의「합창(교향곡 9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거문고 소리 맑으면 학이 저절로 춤추고, 꽃이 웃으면 새가 응당 노래한다.”(琴淸鶴自舞 花笑鳥當歌)
나는 돌아앉아 거문고 줄이나 고르며 삭거한 지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수필이란 이름으로 겨우 240여 편 정도의 글을 발표했다. 그 글들을 독자가 한눈에 개관할 수 있도록 총 61편을 가려 뽑아 재작년에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란 선집을 엮은 바 있다. 이로써 산문은 그만 쓰려 했으나, 배운 도둑질 같아 청탁을 묵살하지 못하고 다시 붓을 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신작 가운데서 고르고, 앞의 선집에서 더 가려 뽑고, 선집에 빠졌다 싶은 글을 합쳐서 총 53편으로 이 책을 엮는다. 기존의 선집보다는 더욱 정선한다고는 했지만 이거다 하고 내세울 만한 글이 단 한 편도 없어 보인다. 이제야 그런 줄을 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건 괴롭고, 체념은 슬프다. 
멀쩡하던 하늘에 별안간 천둥이 울로 번개가 친다. 내 글이 독자의 가슴에 천둥이 되고 번개가 될 수는 없단 말인가. 시건방진 소리, 소가 다 웃겠다. 다만 이 책이 가진 것 없고 힘없는 그리고, 외로운 사람한테 봄날에 바람같이 길가에 풀꽃같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