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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안과 밖    
저자:장정아ㆍ심주형ㆍ정주영 책임편집, 구자선ㆍ권기영ㆍ송승석ㆍ신지연ㆍ심주형ㆍ이원준ㆍ이유정ㆍ이정희ㆍ장정아ㆍ정은주ㆍ정주영ㆍ조형진 집필
출판일월일:2022년 5월 31일
판형/면:신국판 / 294면
ISBN:978-89-94138-85-5 0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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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소장: 장정아) 연구진이 장기간 고민하고 토론한 결과를 바탕으로 공동 집필한 것으로서, 일반 대중에게 어려울 수 있는 중국적 표준과 세계질서라는 주제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최대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교양서 형식으로 썼고, 쉽게 풀어쓰면서도 학문적 깊이를 잃지 않고자 했다. 특히 우리 연구진이 다양한 주제와 지역의 현장조사와 연구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기에 이 책의 집필이 가능했다고 자부하며, ‘중국적 표준과 세계질서라는 주제로 국내에서 처음 나온 대중교양서란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 우리 연구진은 국경지대 연구, 중국 향촌 연구, 정치학, 동남아와 중국의 관계 연구, 토지문제와 거버넌스 연구, 화교화인 연구 등 광범한 주제에 대해 연구역량을 갖춘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본토에 대한 다양한 현장조사와 문헌조사 경험과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신강 위구르자치구, 중국 국경지대 소수민족 촌락, 홍콩, 동남아 등 일반적인 중국 연구자들이 현장조사하기 힘든 지역들에서 직접 현장조사를 해본 연구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학문적 성과를 딱딱하지 않은 언어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풀어써서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를 집필하는 것이 가능했다.

* 이책은 크게 .중국적 표준과 세계질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일대일로, 동아시아, 정치외교.국경의 안과 밖: 접경지대, 화교, 그리고 사회문화적 변화와 연속성의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부는 다시 중국적 표준과 일대일로 그리고 세계질서중국 정치외교와 거버넌스로 나뉘어, 중국적 표준과 규범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미중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 속 주요 이슈는 무엇인지, 세계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인식은 어떠했는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핵심 지역인 동남아에서는 일대일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중국 정치권력의 역사적 문제, ‘군민융합용어 소멸 현상의 함의, 사투리와 올림픽의 정치적 함의, 코로나와 권위주의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실었다. 부는 접경지대의 경관과 정치화교화인: 고투와 공존’, ‘중국 도시와 향촌: 사회문화적 변화와 연속성의 세 절로 나누어, 신강, 홍콩, 베트남 등 접경지역의 경관과 정치, 한국 화교와 쿨리, 베트남 화교난민, 한국과 베트남의 화교배척 사건 비교, 토지소유 제한 문제, 현대에 재등장한 피휘(避諱) 금기, 문화와 예술 정책, 코로나와 사교육 금지 그리고 최근 영화 장진호와 당에 대한 시민의 인식 등 여러 관점의 글을 통해 복합적인 중국을 드러내고자 했다. 중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견지하면서도 풍부하고 흥미로운 다양한 주제를 다룬 이 책이 국내에서 중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책 속 주요 구절

* ‘동아시아 담론은 한국 진보 진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통해 어느 정도 실제 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담론은 실제 동아시아로 거의 확장되지 못했고, 그저 한국만의 담론이었다는 냉철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필자: 조형진)


* 냉전 시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와는 달리, 마오쩌둥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와 사회제도의 차이가 갖는 중요성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 침략의 질곡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부강한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중국의 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동아시아 냉전의 특수성을 초래하였다. 아울러, 여기에는 중국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사유하는 일종의 중국 중심적 세계관이 확인된다. , 냉전 시대의 양대 진영 중 하나에 속하는 한 구성원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진영을 구획한다는 점에서, 마오쩌둥 시기 중국공산당의 국제정세 인식에서 중국 중심적 세계관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통 시대의 중화주의적 천하관의 일면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 이원준)


* 베트남이 중국에 제안한 일대일로와 함께 하는 두 개의 회랑 하나의 경제권계획은 중국과의 특수 관계를 활용해 동남아시아 지역 내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이몽(異夢)’을 담고 있다. 이 계획의 추진 향배에 따라,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경제·물류의 흐름과 지형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또한 양국 간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며 소수민족의 삶의 터전인 베트남 북부와 중국의 남부 국경지역이 자본주의적 물류흐름의 매듭이자 교차점으로 더욱 급속히 전화해 갈 것으로 예상되기에, 국경경관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 문화-정치적 의미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내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필자: 심주형)


*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고위 지도자들의 한 가지 특성은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세대보다 사투리를 덜 사용한다는 점이다. 보통화 교육을 받고 보통화로 송출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세대가 고위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통화가 일종의 필수 교양이었다. 하지만 권력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일 것이다. 사투리를 쓰면서 권위를 유지할 만한 혁명가의 전설이나 위압적인 카리스마가 이들에게는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끔씩은 억지로라도 사투리를 끼워 넣어 인민에게 다가가는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필자: 조형진)


* 불매운동이라는 외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1905년의 불매운동과 2017년의 불매운동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간의 역사적 변화에서 파생된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제국주의의 침략과 국가권력의 붕괴라는 이중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이원준)

 

* 홍콩인이 먹을 쌀과 채소를 홍콩에서 생산하자는 운동은 큰 의미를 가진다. 과거 홍콩은 식량자급률이 높았지만, 여러 이유로 점점 낮아져 현재는 쌀도 거의 전부 수입하고 채소자급률은 2%도 안 된다. 자급률을 다시 높이자는 것은 단순히 자기 땅의 농산물이 몸에 좋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대륙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물질적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끊임없는 개발을 통해 중국대륙에 점점 통합되는 것 외에 홍콩이 살 길은 없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2010년 홍콩 농촌마을을 철거하고 고속철도를 뚫으려는 정부의 행동을 저지하는 청년의 행동 중 사흘에 걸친 ‘261고행이 있었다. 고속철도의 홍콩 구간이 26임을 상징하는 26보마다 한 번씩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이다. 당시 농촌마을을 지키려 했던 운동이 홍콩 역사에서 분수령이 된 것은, 홍콩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가치, 빠른 발전과 효율성의 추구를 지상목표로 삼던 가치를 대체하는 가치를 만들어낸 데 있다. 그것은 세상을 뒤바꾸겠다는 강렬한 구호가 아니지만, 가치관을 바꾸고 물질적 기반을 만들어낸 점에서 커다란 폭발력을 담고 있었다.

고행하는 홍콩 젊은이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며 손에 받들고 있었던 것은 그 어떤 깃발도 구호도 아닌 씨앗이었다. (필자: 장정아)

* 서대문형무소는 조선의 많은 독립운동가가 고문을 이기지 못해 옥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곳에서 외국인인 4명의 화교가 항일운동을 하다 고문으로 인해 옥사한 것은 새로운 사실이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렬하게 진행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대립 양상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어 한중 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때 인천 화교 항일활동의 사실과 의의를 한중이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뜻깊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될 것이다. (필자: 이정희)

* 연규산과 이준길의 삶의 터전 

근처에서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이 있었다는 것은 우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원혼이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도깨비로 이승에서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2185일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주최한 만보산사건1931년 화교배척사건 90주년 국제 웨비나에 참가하여 발표한 정병욱 고려대 교수는 인천의 지인들에게 이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표석이라도 세워달라고 했지만, 아직도 아무런 답이 없다.”라고 했다. 인천의 시민사회가 여기에 답할 차례가 아닐까. (필자: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