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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하에서 살아가기    
저자:류자오후이 지음, 장정아ㆍ안치영ㆍ황옌ㆍ리페이ㆍ이용운ㆍ쉐거 옮김
출판일월일:2022년 5월 31일
판형/면:신국판 / 2440면
ISBN:978-89-94138-81-7 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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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중국 절강(浙江)대학 류자오후이 교수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중국의 대운하에 살고 있는 선민(船民)들에 대해 수행한 현지조사 내용에 기반한 연구를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소장 장정아 교수와 연구진이 함께 번역한 책이다. 원래 공동 현지조사를 기획했으나 운하 선민에 대한 외국인의 조사 동행이 어렵다는 점 등의 현실적 요인으로 인해 번역을 하기로 했다.

 

* 중국 운하에 대한 연구서가 조영헌 교수의 책들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 학계의 실정에서 이 책은 중국 운하와 수운과 관련하여 실증적 조사를 바탕으로 저술된 연구서이며, 특히 운하 자체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선민들이 운하 환경과 수질의 변화를 어떻게 나름의 인식체계로 이해하는지, 선민들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 결혼관계망, 신분의 변화는 어떤지 등 광범한 주제에 걸쳐서 생생한 현장조사에 기반해 분석한 책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역자 후기 중에서

 

* 대운하는 역사적으로 중화 제국을 유지시켜 온 대동맥으로 현대의 고속철도 혹은 초고속 정보통신망에 비견되는 기간 물류 교통망이었다.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에서 남북을 잇는 대운하가 없었다면 거대한 중앙집권적 통일 제국인 중화 제국의 존속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운하 건설은 만리장성과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 대규모 토목건설 상징이자 분열된 중국을 통일한 진 제국과 수 제국이 망하게 한 원인으로 여겨진다. 바로 진 제국과 수 제국을 망하게 하였던 대운하 건설이 한 제국과 당 제국 번영의 기초였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 근대 이후 철도와 해운이 등장하면서 운하는 쇠락하였고 운하는 물류의 중심에서 낙오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운하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부터이다.

* 운하가 물류의 대동맥이었던 과거의 번영은 사라지고, 이제 일부 화물선이 다니기는 하지만 값싸고 무거운 건축 자재 운송만이 과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배에는 아직도 배에서 생활하는 선민들이 있다고 했다. 류 교수의 이 책은 바로 그들의 땀내어린 삶을 함께 하며 연구한 것이다. 선민들은 이제는 잊혀진 집단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국의 한 모퉁이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요, 근대화와 혁명 속 변화를 겪었지만 이제 사라져 가는 역사의 기억을 품은 살아있는 화석이기도 하다. 이 책이 온몸으로 역사를 살아낸 중국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책 속 주요 구절

 

* 밤낮으로 운하를 오가는 선민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들은 배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 그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며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관광객들에게도 운하 주변 주민들에게도 운하 관리자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거의 모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답은 국가 그리고 유네스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대운하가 모든 중국인과 연관되어 있다면 운하로 먹고 사는 운하 선민이 가장 가까운 사람일 터인데, 왜 유산 등재 속에서 운하 선민은 잊혀진 타자가 되었을까? 이에 대해 현실을 정확하게 조사연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거창한 이론을 내놓은들 모두 창백하고 허약한 해석일 뿐이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연구진은 운하 선민들을 따라 남쪽부터 북쪽까지, 물위에서부터 육지까지, 배에서부터 마을까지, 현실 생활 현장에서부터 온라인의 사이버 공간까지 쫓아다녔다’. 선민에 대한 연구결과가 단지 현대 중국의 대운하 국가문화공원 건설에 그저 활용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속물적 실용주의나 다름없다. 민족과 국가의 시각을 넘어 다양한 문명이 서로를 참조하며 배우는 데에, 그리고 문화유산의 정치학에 대한 대화식(對話式) 담론 형성에 이 문화기술적 민족지(ethnography)가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그럼으로써만 우리는 학문과 실천을 아우르고 자아와 타자를 모두 껴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현지조사를 하며 발견한 또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선민이라는 집단과 다른 집단 사이의 사회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이뤄진 해방으로 천민 신분이 폐지되면서 선민들은 근대 국민 신분을 얻었고, 1950년대 초반의 공사합영(公私合營)’ 정책을 통해 노동자계급(工人階級)’이라는 사회주의 사회의 주인공으로 변화하였다. 이들의 개인적 삶의 역정에서는 선민이라는 신분의 구성원 자격이 변화되는 사례들을 빈번히 볼 수 있었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변화되고 사회적 권리가 부재한 공동체로서의 선민 사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민의 소득이 크게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선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사회관계망의 구성, 생활방식 등 여러 면에서 선민들은 육지 사람들과 여전히 큰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선민 사회와 다른 인간집단 간의 사회적 장벽은 단지 배와 육지라는 삶의 지리적 공간의 차이 또는 역사와 전통문화의 관행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 육지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친소 여부와 상관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며 갈증을 해소하게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배에서는 다르다. 연구진이 배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동안, 연구자들이 배에 올랐을 때 물을 한 잔 따라주는 선민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외래자인 연구자를 경계해서가 아니라,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배 위의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일부 옛 선민들은 예전부터 자신만의 신앙과 금기가 있었다. 물 위에서 생활하기에 선민들은 용왕을 특히 경외하며 일상적으로 대왕(大王)’노패(老牌)’를 모셨다. 새해가 되면 돛대에 대련을 붙이고 세 종류의 짐승을 놓고 뱃머리에 붉은 색을 드리운다. 선민들은 새로 만든 배를 진수시킬 때는 신을 경배하는 의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길일을 택해 진행했다. 출항하기 전에는 선신(船神)께 제사를 올리며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고, 강기슭에 선신 사당을 만들어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오늘날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선민들은 날씨 예측을 더이상 하늘이나 신선들에게 제사지내는 데 의존하지 않고 GPS와 무선통신 등으로 위험을 피하며, 풍랑이나 날씨가 열악한 날엔 신에게 기도하며 운을 구하기보다는 웨이신 공식계정이나 무선통신을 통해 경고 안내를 보는 게 더 도움이 많이 된다고 여긴다.

역사적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선민들이 신과 부처님에게 비는 것이 금지되었고, 이런 단절기를 거치면서 신과 부처는 점차 선민들의 삶에서 사라져갔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이번 조사를 할 때 42%의 선민이 종교신앙이 없다고 답했다. “요새 누가 봉건미신을 믿어? 난 그런 거 안 믿어.” 이러한 신앙의 몰락과 함께 배 위에 존재하던 금기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 선민들은 운하에서 살아가기에 물 환경의 악화 과정을 몸소 겪어왔고, 수질에 대해 판단하는 자기 나름의 표현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육지에서 생활하는 옛 선민들은 과거에 배를 집으로 삼아 살면서 먹고 마시고 쓰레기 버리기를 모두 물 위에서 해결했다고 말하며 그 땐 그래도 물이 맑았었다고 했다. 어떤 선민은 화물을 실으러 갈 때 어떤 아이가 호수로 떨어지는 걸 봤는데 운하 바닥까지 보였었기에 장대 갈고리로 아이의 옷을 걸어서 끌어내 구했던 아찔한 기억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1950~60년대 운하가 상당히 맑았음을 보여준다.